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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

말테의 수기

오드리시아 2019. 5. 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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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 

 

 

- 책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저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하나뿐인 장편소설이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인이다. 본명은 르네 마리아 릴케라고 한다. 태어나기 일 년 전 한 살 위에 누나가 세상을 떠나서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여성적이게 짓고, 여자아이처럼 키웠다고 한다. 딸을 잃은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단발머리의 여아용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14살 연상 루 살로메라는 여성작가의 제안으로 르네 마이아 릴케에서 라이너 마이라 릴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의식에 흐름대로 적은 수필 같이 느껴진다.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작가는 말테의 수기에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보는 법을 배워야 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는 것은 생물학적인 눈이 있으면 다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정말 다 보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작가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두 번 정도 적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보는 것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 생각들도 마치 보이는 것 같이 표현했다. 처음 읽었을 때에도 내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여러 번 읽어도 정확하게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가 보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이 마치 그림같이 느껴진다. 그는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회상하면서 두서없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시인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가 보는 시선은 남들과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그는 남성적인 감정과 여성적인 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말하고 있는 죽음, 사랑 등이 일반적인지 않게 보인다. 그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일반적이라는 것은 또 무언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일반적인 것이 아닌 나의 고정관념이나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라는 소설에서 한 가지 사건을 본 다섯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다섯 사람의 객관적인 의견이 아니라 그 사건을 본 다섯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이 있을 뿐이라고 적혀있다. 개인이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 또한 의식에 흐름대로 주관적인 느낌을 적고 있다. 마리아 라이너 릴케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를 주기 위해 장미를 따다가 손가락에 상처가 생기고 그것이 덧나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민음사 작가 연보에는 백혈병이라고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에는 패혈증이라고 적혀있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시간이 되면 또 읽어봐야겠다. 10번 이상 읽으면 좀 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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